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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X] FreeBSD vs. GNU/Linux vs. Windows NT 비교

FreeBSD vs. GNU/Linux vs. Windows NT

Robert A. Bruce <rab@pike.cdrom.com> 저.김승영 <nobreak@kr.FreeBSD.org> 역.
1999년 3월 10일
원문: http://www.cdrom.com/~rab/bsd_chart.html

FreeBSDGNU/LinuxWindows NT신뢰도 다년간 쉬지않고 운영되어온 FreeBSD 서버들에 대한 상당수의 근거 자료 볼때, FreeBSD는 매우 튼튼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새로운 소프트 업데이트1파일 시스템은 디스크 입출력 효율을 극대화 시키며,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트랜젝션 기반 응용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여전히 안정성을 보장합니다. 리눅스 시스템의 신뢰도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버들이 수년간 중단없이 운행되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디스크 입출력이 비동기화 방식이기 때문에, 트랜젝션 기반 응용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낮으며, 비동기화 방식은 시스템 크래쉬나 전원문제가 발생할경우 파일시스템이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용자에게 있어 리눅스는 매우 믿음직한 운영체제입니다. 모든 윈도우 NT 사용자는 "공포의 파란 화면(역자주: 프로그램 실행중에 나타나는 오류 화면)"에 익숙하며, 낮은 신뢰성은 윈도우 NT의 커다란 단점중 하나입니다. 몇몇 문제들은 윈도우 2000에서 해결될 테지만, "불필요하게 덩치가 커지는 것(code bloat)"은 더 많은 신뢰성 문제들을 야기할것이 분명합니다. (역자주: "code bloat"란 불필요한 기능 추가로 인해 점점 덩치가 커지는 프로그램을 비꼬는 뜻입니다. [참고])성능 FreeBSD는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네트워크 응용프로그램에 적합한 운영체제입니다. 동급 사양의 하드웨어에서 다른 운영체제에 비해 향상된 성능을 보여줄 것 입니다. 인터넷의 공개 서버중 가장 방대하고 사용빈도가 높은 ftp.…

[UNIX] FreeBSD란 무엇입니까?

출처 : http://www.kr.freebsd.org/doc/WhatIsFreeBSD/
FreeBSD란 무엇입니까?Korea FreeBSD Users Group <doc@kr.FreeBSD.org> 저.
1999년 5월 28일, revision 1.0.1

FreeBSD는 정통 유닉스 운영체제 입니다.

FreeBSDNetBSD, OpenBSD, BSDI와 함께 버클리 CSRG(Computer Systems Research Group)의 마지막 작품인 4.4BSD-Lite2에 기반한 정통 유닉스 운영체제로써, BSD 시스템의 전통을 계승합니다. 현재 FreeBSD는 x86(i386 이상)과 알파 기종에서 운용 가능하며, 더욱 다양한 기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FreeBSD는 자발적 참여로 구성된 팀에 의해 오픈 소스 개발 모델을 기반으로 전 세계의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개발되며, FTP, WWW, CVS 시스템을 통해 모든 소스와 관련 문서가 공개됩니다.
오픈 소스 개발 모델을 따르는 운영체제의 두 양대 산맥인 FreeBSD와 리눅스는 그 개발 모델과 인터페이스가 유사하지만, FreeBSD 라이센스는 리눅스의 GPL에 비해 자유롭고, 같은 사양의 시스템에서 20-30% 향상된 성능을 보이며, 동기화 IO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트랙젝션 기반 응용에서도 안정성이 보장됩니다.
FreeBSD는 강력하며 안정적입니다.FreeBSD 프로젝트는 실제 상황의 로드에서 최대와 성능과 신뢰도를 제공하기 위해 시스템을 정교하게 튜닝하는데 수천시간을 들였으며, 그 결과로 다른 운영체제에서 보기 힘든 진보된 네트워킹과, 향상된 퍼포먼스를 제공합니다.
수백 수천의 동시 다발적 접속으로 야기되는 폭발적 네트워크 부하를 다년간 유연히 지탱해온 상당수의 FreeBSD 서버에 대한 근거자료 또한 FreeBSD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돋보이게 합니다.
하루 800GB가 넘는 트래픽을 처리하는 Walnut Creekftp.cdrom.com을 …

파평 윤씨(坡平 尹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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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옛 문헌상에 14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현재는 44개의 본관이 있으며 이중 11개의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으나 해평, 무송, 칠원, 해남, 평산을 제외한 모든 본관은 파평 윤씨에서 분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남원 윤씨, 신영 윤씨, 야성 윤씨, 함안 윤씨, 평산 윤씨 등은 파평으로 다시 합본이 되었다고 한다.

[유래]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尹瓘, 1040~1111) 장군은 고려 문종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고려 예종3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 5천명을 죽이고 130명을 생포하는 등 북진정책을 완수한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龍淵)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날 이 용연에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되는날,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으로 만든 궤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금궤를 건져서 열어보니 한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체속에 누워있었다.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윤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의 일대기에도 또 나온다.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廣浦)에서 전쟁 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하였다. 이번에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윤관 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