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09/06 파평 윤씨 부인 미라..CT 검사 (2)
  2. 2004/07/12 파평 윤씨(坡平 尹氏)

파평 윤씨 관련 다른 글 : 파평 윤씨(坡平 尹氏)에 대한 설명 | 2004/07/12

3년전 뉴스에, 430년이 된 파평 윤씨 가문의 부인 미라가 발견됐다고 했었다.

관련 기사 : 430년 잠에서 깨어난 ‘파평 윤씨 모자 미라’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2002년 9월 파평 윤씨 종중에서 미라를 기증받아 고대 의과대학에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 고대 의과 대학은 '출산 과정에서 자궁 파열로 인한 과다 출혈'이 미라의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남아로 밝혀진 태아도 자궁에서 미라상태로 남아있었다. 이에 미라를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로 명명했다.
...
인종의 후궁인 숙빈이 쓴 한글편지도 출토돼 미라의 신분 확인에 한 역할을 했다. 숙빈은 문정왕후의 오빠인 윤원량(1495-1569)의 딸이다. 따라서 윤원량 집안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고 윤원량의 자식인 윤소(1515-1544)의 첩실 외동딸일 것이라고 정호섭 고대박물관 학예사는 추정한다.

오늘 뉴스에는 그 미라를 CT(컴퓨터 단층 촬영)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파평 尹씨부인 미라 CT검사

최신 CT 검사의 장점은 미라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기본 골격은 물론 위, 폐, 대장, 소장 등 내부 장기 모습, 치아 뿌리까지 3차원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윤미라’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대부 부인 미라는 약 155㎝로 당시로선 작지 않은 키에, 팔다리가 가는 체형이었다.

윤미라의 관에서는 ‘파평윤씨지구(坡平尹氏之柩·파평 윤씨의 관)’라고 쓴 명정(銘旌)과 함께 속곳 허리띠에서 ‘병인 윤시월’이라는 한글 묵서(墨書)가 발견돼 발굴 당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이를 근거로 윤씨 가문 부인이 1566년 윤시월(양력 12월)에 숨진 것으로 추정됐고, 부검에서는 아기를 낳다가 죽은 것으로 판명됐다. 자궁이 찢어진 상처가 발견됐고 태아의 머리가 질 입구까지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검사를 통해 윤미라의 정확한 나이를 확인하고 태아 미라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 발굴된 미라에 대해서도 부검 없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CT 촬영으로 얻은 데이터 분석에는 한 달이 걸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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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urtle 2006/09/14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부인한테 잘해줘... 출산할 때 저렇게 목숨 내놓고 하는거야... 의료가 발달됐다고 쉽게 쉽게 막 낳는거 아니라구~~



[윤씨]는 옛 문헌상에 14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현재는 44개의 본관이 있으며 이중 11개의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으나 해평, 무송, 칠원, 해남, 평산을 제외한 모든 본관은 파평 윤씨에서 분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남원 윤씨, 신영 윤씨, 야성 윤씨, 함안 윤씨, 평산 윤씨 등은 파평으로 다시 합본이 되었다고 한다.

[유래]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尹瓘, 1040~1111) 장군은 고려 문종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고려 예종3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 5천명을 죽이고 130명을 생포하는 등 북진정책을 완수한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龍淵)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날 이 용연에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되는날,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으로 만든 궤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금궤를 건져서 열어보니 한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체속에 누워있었다.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윤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의 일대기에도 또 나온다.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廣浦)에서 전쟁 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하였다. 이번에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윤관 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잉어떼는 어느틈에 흩어져 버리고 없어졌다.
그래서 파평 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또한 선조에게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 묘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계동에 있다.

[ 분파 ]

- 함안파
- 남원파
- 덕산군파
- 문정공파
- 신령공파
- 대언공파
- 양주파
- 봉록군파
- 판소공파
- 야성파
- 전의공파
- 소정공파
- 원평군파
- 소도공파
- 판도공파
- 소부공파
- 태위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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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윤씨(南原尹氏) 유래
시조 윤위(尹威, 시호는 문헌)는 윤신달의 8세손이며, 윤관 장군의 증손자이다. 윤위는 1176년(고려 명종 6년)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박사를 거쳐 기거랑, 이부랑중, 예빈소경 등을 지내고 1200년(고려 신종 3년) 국자사업으로 호남에 갔을 때 남원에서 복기남이 반란을 일으키자 혼자서 적을 토평하여 평정 시켰다. 그 공으로 남원백에 봉해지고 남원을 식읍으로 하사 하자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 윤씨에서 분관하여 남원으로 하였으나 파평 윤씨로 다시 합본 하였다고 한다.
- 윤위의 묘소는 남원 문덕산에 있으며 음력 3월 18~20일에 향사 한다.

★무송윤씨(茂松尹氏) 유래
무송 윤씨는 원래 소호씨이다. 상고시대에 소호 금천씨 차비의 아들 반이 궁정이 되었는데 왕이 옹주의 윤성에 봉해서 윤씨로 하였다고 한다. 오계시대에 후손인 윤경이 병란을 피하여 무송(전북 고창)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송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후의 기록은 알 수가 없다.
시조 윤비는 고려 예종 때 보승랑장으로 무장현 호장을 지냈다.
- 윤비의 묘소는 전북 고창군 대산면에 있다.

★양주윤씨(楊州尹氏) 유래
시조 윤덕방은 양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로 고려 시대에 판전의사를 지냈다. 그래서 후손들이 양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영천윤씨(永川尹氏) 유래
시조 윤절생(尹切生)은 고려시대에 호장을 지냈다. 그의 4세손 윤승관이 정당문학을 지내고 고울(영천)백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본관을 영천으로 하였다.
영천윤씨의 인물로는 태종 때 군수 윤순(淳), 성종 때의 이조참의 윤긍(兢), 선조 때 중추부참지사 윤빙(聘) 등이 있다

★예천윤씨(醴泉尹氏) 유래
시조 윤충(尹忠)은 고려시대에 추밀부사를 지내고 예빈사소윤에 추증되었다. 그의 후손들이 예천에 대대로 살아오면서 본관을 예천으로 하였다.
증손 윤상(祥)은 태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성, 예문관제학, 성균관박사를 지냈으며, 성리학과 역학에 밝아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칠원윤씨(漆原尹氏) 유래
시조 윤시영(尹始榮)은 신라 무열왕 때 태자태사로서 고명원로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윤황 이후의 기록은 없어서 알 수가 없고, 고려시대에 칠원백, 호장을 지낸 윤거부를 1세 조상, 중시조로 하고있다. 그의 17세손인 윤길보(시호는 충의)가 구성군에 봉해지고 후손들이 칠원군에 살면서 본관을 칠원으로 하였다.
- 묘소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에 있다.

★함안윤씨(咸安尹氏) 유래
시조 윤돈(尹敦)은 남원 윤씨의 시조인 윤위의 손자이다. 윤돈은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전의정랑을 거쳐 이부시랑에 올랐다. 이 때 함안에서 반왕의 난이 일어나자 왕이 원수 겸 자사에 봉하고 난을 평정토록 명하자 병사들을 이끌고 평정하여 그 공으로 수문전 태학사, 판밀직 문하시중에 특진되고 함안백에 봉해졌으며 함안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다.
윤돈에게 아들 4형제가 있었는데 첫째 아들 윤희보(주부공)은 본관을 함안으로 하였고, 나머지 3형제는 남원윤씨를 이었다. 그러나 후에 파평 윤씨로 합본하였다고 한다

★[해남윤씨](海南尹氏) 유래
시조 윤존부(尹存富)는 고려중엽 때 사람이나 그후 7세손 까지는 출생지와 거주지 등이 분명하지 않다. 중시조인 8세손 윤광전이 고려 공민왕 때 사온 직장을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아들들을 데리고 해남으로 피하여 살게되어 본관을 해남으로 하였다.
- 윤광전의 묘소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 계라리 한천동에 있으며 음력 9월 9일에 향사한다.

★해주윤씨(海州尹氏) 유래
시조 윤중부(重富)는 조선 세종 때 중추부지사를 지냈으며, 아들 윤희평(熙平)은 연산군 때 무과에 급제, 공조판서와 중추부지사를 지냈다. 서흥 윤씨(瑞興)라고도 했었다.

★[해평윤씨](海平尹氏) 유래
시조 윤군정(君正)은 고려 고종, 원종 때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좌복야, 공부판사(工部判事)를 지냈다. 그의 손자 윤석이 고려 충숙왕 때 충근절의 동덕찬화 보정공신, 벽상삼중대광, 도첨의사, 우의정, 판전리사사로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해평을 본관으로 하였다.


☆분 파
- 문영공파(文英公派) : 윤지현(之賢)은 윤군정의 증손이다.
- 충간공파(忠簡公派) : 윤지호(之彪)은 윤군정의 증손이다.
- 오음공파(梧陰公派) : 윤두수(斗壽)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으로 충간공파에서 갈라졌다.
- 월정공파(月汀公派) : 윤근수(根壽)는 윤두수의 동생으로 대제학을 지내고 충간공파에서 갈라졌다.
- 치천공파(稚川公派) : 윤방(昉)은 윤두수의 아들이다.
- 장주공파(長洲公派) : 윤휘(暉)는 윤방의 동생이다.
- 백사공파(白沙公派) : 윤훤(暄)은 윤휘의 동생이다.

Posted by 덕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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